나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것인가, 억눌리고 포로된자로 살것인가?
우리는 분명히 성경에서 이르심대로 (창1: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아주 자랑스런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원죄와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극찬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세상을 실제로는 그렇게 행복하게 살아가지 못한다. 왜 그런지? 오히려 늘 긴장하고 불안하며 무언가에 병든 마음으로 심령이 상한 자나 또한 무언가에 억눌리고 갇힌 자로 지배 당하며 살아간다. 즉 세상을 잘 살아감이 아니라 포로된 자, 종된 자처럼 살아간다.
원인과 이유는 아주 많겠지만, 성경은 (롬 6;16)”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가” 이 말씀에서 우리는 문제의 빌미를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불안하다면? 근심 걱정과 염려하는 마음이 지속된다면? 그 원인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믿음의 삶에 대한 ‘나의 영적 돌아봄’이 요구 된다.
근심하는 마음은 적당히 끝나지는 법이 없다. (잠15:13)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Crushes the spirit‘ 즉 우리의 영혼을 으깨버리며 나를 무력화 시키거나, 그 조각조각 깨어진 심령은 또한 결국 (잠17:22)“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말씀대로 “A crushed spirit dries up the bones.” 즉 근심은 오래 지속되면, 우리의 뼈속까지 마르게함으로 회복하기 힘든 병적인 상태로 나를 몰아가곤 한다.
속히 벗어나지 아니 하면,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관리하도록 권한을 부여하신 풍요롭고 아름다운 이 세상을 온전히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 세상에 대하여 극히 취약한 존재로 살아가거나, 아예 전적으로 죄의 종노릇하며 세상에서 허망한 것을 쫓는 자로 또는 믿음은 있다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에 쫓기며 사는 마치 경계선증후군(borderline syndrome)이 있는 사람처럼 살아가게 된다.
이는 하나님이 주신 형상을 가진 자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믿음의 신자로써의 기본을 놓쳐, 결국 하나님의 자녀로써 누릴 권세 조차도 다 놓친 것이다. 믿는 자의 태도와는 달리 ‘(롬6:12,13)몸의 사욕에 순종했거나, 불의의 도구로 죄에게 내어주지‘ 않았다면, 그렇다면 나는 이미 ‘(롬15:1)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가진 자이거나, 세상에서 믿음이 없는 자처럼 살아서 언제든지 죄에 유혹 당하기 쉬운 모습으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신자들은 언제나 항상 자신의 영적 상태를 자주 돌아봐야 한다. “(요일3:9)하나님께로 난 자 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즉 죄의 씨에 유혹당하지 않으려면 내 안에 하나님의 씨가 거해야 하며, 죄와의 공존이나 죄와 절충타협은 원래부터 없다. 그런데도 타협점을 자꾸 찾으려 한다면, 이미 나는 죄를 허용한 것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성경은 ‘(롬1:23)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이나 동물의 우상’으로 바꿀 수는 있어도, 하나님의 형상과 마귀의 형상이 공존할 수 없다고 한다. 나는 하나님께 속한 자인가? 세상에 속한 자인가? 지금 나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로 살아가고 있는가? 믿음은 선택과 결단이다.
“(눅4:18)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He has sent me to proclaim freedom for the prisoners and recovery of sight for the blind, to release the oppressed‘, 예수님 공생애사역초기에 회당에 들어가 읽어 주신 이사야서 61장 말씀입니다. 그리고 (눅4:21)에서 ‘이 글이 오늘 너희에게 응하였느냐‘라고 예수님께서는 확인하시기 까지 하십니다. 세상에 대하여 죄에 대하여 포로된 자, 억눌린 자 되기를 원하십니까, 자유자로 살길 원하십니까? 그러면 오늘 나는 무엇을 어떻게 결단해야 합니까?